만남 한땀 (사람을 잇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 방문기 - 20대의 나를 조우하다.

하루하루, 걷는 사람 2026. 6. 27. 15:02

설레는 발걸음, 코엑스로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6월 26일 금요일 오전 11시, 코엑스에 도착했다.

도서전이 시작된 이후 늘 관심 있게 지켜봤지만,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날은 오픈런이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대기하다 오픈하자마자 달려가는 사람들,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목요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방문했다는 소식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렸을 듯하다. 나는 다소 여유를 두고 11시 30분쯤 전시장에 입장했다.

 

― 2026 서울국제도서전

 

 

도서전의 뜨거운 열기

B홀 입구로 들어서니 강연이 진행되는 책마당에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책들의 표지였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색감의 표지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책의 판형도 매우 다양해졌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부터 읽기 좋은 크기까지, 판형과 활자의 조화가 가독성을 더욱 높여주는 듯했다. 활자의 크기와 종이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 책마당에서 진행된 북 토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상 깊었던 부스는 철학 전문 출판사 '아카넷'이었다. 2026년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오른쪽 페이지에는 원문 번역, 왼쪽에는 상세한 기원과 주석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그 책을 보며 잠시 멈춰 섰다. 20대의 나는 이 난해한 문장들을 과연 얼마나 이해하며 읽었을까. 성경은 두 번이나 완독했지만, 니체의 책은 단 한 번의 독서로 끝냈던 기억이 난다. 플라톤의 『향연』과 후설의 책들 앞에 서니, 예전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든 지금의 내가 다시 이 책들을 완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0123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대형책 제작, 빨강색 표지의 책이 원본 크기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그렇게 한 부스 한 부스를 구경하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부스는 레모출판사 부스였다. 

레모 출판사 부스에서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를 발견했을 때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내 책꽂이 한쪽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그의 대작 『인생사용법』이 떠올랐다. 그때 다 읽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페렉의 천재성을 이제는 제대로 마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레모출판사 사장님은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조르주 페렉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을 하다 출판사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아니 에르노, 조르주 페렉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아니 에르노의 팬이라는 한 젊은 아가씨가 조르주 페렉의 책을 2권 샀다. 젊은 친구들은 조루주 페렉을 어떻게 읽을까. 궁금해졌다.

 

―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유유츨판사의 『 코스모스 읽는 법 』

유유 출판사의 『코스모스 읽는 법』, 『일상 질문 사전』 같은 재치 있는 제목들의 책들도 인상적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주제들을 책으로 잘 출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비, 민음사, 문학동네 같은 대형 부스들은 젊은 독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책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 도서전 한 부스에서 진행된 편지 쓰기

 

 

"다리가 아프고 배낭은 무거웠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펼친 책장 사이로
20대의 내가 걸어 나와
말을 건네는 듯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나를 만나는 일이다. "

 

 

―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 '인간선언'

 

무언가를 보기 위해선 열정만큼 체력이 필요하다.

도서전은 수요일 부터 시작되어 3일째를 맞았는데, 이미 상당수의 부스에서 준비한 굿즈들이 품절되어 있었다.

키캡 키링, 고양이 키링 등 귀엽고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의 굿즈들은 샘플만 남기고 품절되어 구매할 수 없었다.

작은 규모의 독립출판사들은 한 군데에 모여 있었는데, 각 작가의 개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다.

일본, 대만, 싱카폴 같은 출판사에서도 나와 있었다. 

개성있는 부스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으나,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붐비는 사람들을 벗어나,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책을 구입하고 발길을 돌렸다.

도서전을 방문하면서 새로운 책보다는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20대에 읽었던 책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 허공에 매달린 책 페이지들

 

 

 

50% B홀만 구경한 비율?

집으로 돌아와 도서전 후기들을 보니, 내가 B홀만 구경했다는 것을 알았다.

A홀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거였다. 핸드메이드 페어같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장소가 아니었어서 미처 보지 못했나 보다. 

알았어도 다 볼 수 있었을까 싶긴하다.

4시에 도서전을 나와 9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 탔어야 했는데, 마지막 정거장까지  그대로 타고 왔다. 

어깨에 맸던 배낭도 무거웠고, 다리도 아팠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열정만큼 체력이 필요하다, 이제.  

코엑스 로비 바닥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앉아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흐뭇함과 다시 읽을 책들을 숙제로 남기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 않으면 어때서

'책을 읽는 사는 사람', '읽지 않으면 어때서'. 부스 곳곳에 적힌 문구들이 떠올랐다.

오늘 사 온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며, 나의 20대, 30대, 40대의 독서들을 되새겨보았다.